마케도니아 - 암피폴리스-안드리스쿠스/ AMPHIPOLIS Tétradrachme stéphanophore
마케도니아 - 암피폴리스
(기원전 2세기)
아테네 식민지인 암피폴리스는 스트리몬 강 어귀 배후지의 매우 중요한 은광을 보호하고 개발하기 위해 기원전 436년에 설립되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 도시는 포위되어 브라시다스(Brasidas)에게 점령당했고 브라시다스 역시 전투 중에 사망했습니다(투키디데스 V, 6-11장). 이 도시는 410년에서 357년 사이에 오른쪽에 멋진 젊은 아폴로를 상징하는 웅장한 시민 주화로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가 기원전 357년에 도시와 은광을 점령했습니다. 다음 2세기 동안 암피폴리스는 마케도니아 왕들의 주요 작업장이었습니다. 키노세팔레스(Cynoscéphales) 이후 조폐국은 테트로볼(tetroboles)로 구성된 자율적인 주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주화의 마지막 단계는 페르세우스가 패배하고 왕국이 4개의 공화국으로 조직된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페르세우스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한 안드리스쿠스는 기원전 148년에 로마인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기원전 147년에 마침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Publius Cornelius Scipio Nasica)에게 패배했습니다. 이듬해인 기원전 146년부터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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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왕국(그리스어: Μακεδονικό βασίλειο) 또는 마케도니아(Μακεδονία)는 그리스 반도의 최북방에 있던 고대 왕국으로, 서쪽으로는 에페이로스, 북쪽으로는 파이오니아, 동쪽으로는 트라케(트라키아), 남쪽으로는 테살리아 지방과 접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를 비롯하여 인더스강까지 진출하면서, 마케도니아는 짧은 기간 동안 고대 근동에서 헬라스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그리스 역사의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된다.
어원[편집]
'마케도니아'(Μακεδονία)라는 나라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낱말 '마케드노스'(μακεδνός)와 연관이 있다. 보통 이 낱말은 원래 '높은 것', '고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아마 고대 마케도니아인을 일컫는 말이었을 것이다.[1][2]
역사[편집]
초기 역사와 전설[편집]
마케도니아의 첫 기지 아이가이(Αιγαί) 주변 땅은 여러 민족들이 살던 곳이었다. 마케도니아는 '에마티아'(에마티온 왕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불렸으며, 아이가이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임금의 도읍인 '에데사'로 불렸다. 전설에 따르면, 카라노스가 수많은 그리스인을 데리고 새 터전을 찾아[3] 이곳으로 와 에데사에 정착하여 이 곳 이름을 아이가이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런 다음 카라노스는 미다스와 다른 임금들을 이 땅에서 쫓아내고 자신의 새 왕국을 세웠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헬렌(Ἕλλην)의 아들인 도로스(Δώρος)가 자신의 백성을 히스타이오티스로 이끌어 이 곳에서 카드메이아 사람들에게 핀도스 산맥으로 쫓겨나 정착하여 마케도니아인이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한 갈래 무리가 더 남쪽으로 이주하여 도리아 인으로 불리게 되었다.[4]
마케도니아의 첫 나라는 처음 기원전 8세기 또는 기원전 7세기 초 아르고스 왕조가 통치하면서 생겼는데, 전설에 따르면 아르고스 왕조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고스 시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그래서 이름도 아르고스 왕조이다)).[5] 아르고스 왕조의 통치를 받는 마케도니아인 부족도 아르게아다이 사람('아르고스에서 전래한'이란 뜻으로 번역된다)으로 불렸을 것이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할리아크몬 강과 악시오스 강이 흐르는 비옥한 충적 평야에 자리잡고 있으며, 올륌포스 산의 북쪽으로 '하부 마케도니아'라고 불렸다. 알렉산드로스 1세 시대에 아르게아다이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당시 륀케스타이나 엘미오타이 등 독립적인 마케도니아 부족들이 살던 상부 마케도니아와, 서쪽으로는 악시오스 강을 넘어 여러 트라케 부족이 살던 에오르다이아, 보티아이아, 뮈그도니아, 알모피아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였다.[6] 페르디카스 1세 임금(혹은 그의 아들인 아르가이오스 1세일 공산이 크다)이 오늘날 베리아(베로이아) 시 주변에 자신의 도읍인 아이가이(오늘날의 베르기나)를 세웠다. 다리우스 1세의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잠시 받은 뒤, 이 나라는 알렉산드로스 1세 임금 때 독립을 되찾았다.
기나긴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대에 마케도니아는 2류 국가로, 스파르타와 아테나이를 번갈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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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리스쿠스(Ανδρίσκος, 기원전 185년 미시아 – 기원전 146년 로마)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자(재위 : 기원전 149년 – 기원전 148년)였다. 마케도니아 페르세우스의 아들이라 참칭하여, 가짜 필리포스(pseudo-Philip)라고도 불린다.
생애[편집]
아나톨리아의 아이올리스 지방에 있던 아도라 뮤티온(현재의 에드레미드)의 직물업자(fuller)였다. 마케도니아 왕위를 노리고, 안티고노스 왕조 마지막 바실레우스인 페르세우스의 아들이라고 참칭하고는 필리포스 6세 (Philip VI)라고 참칭하기까지 했다.[1]
안드리스쿠스는 마케도니아가 이미 조각나서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하고, 시리아로 쫓겨난 셀레우코스 왕조의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의 지원을 받아 로마 공화정과 싸웠다.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 그는 이때 패주를 하였다가 다시 트라키아 대군을 이끌고 마케도니아에 나타나 기원전 148년에 법무관 푸블리우스 유벤티우스(Publius Juventius)를 물리치고, 바실레우스를 참칭했다. 그러나 테살리아의 정복과 카르타고와의 동맹은 상황을 악화시켰고, 기원전 148년에 〈제2차 피드나 전투〉에서 퀸투스 카아이킬리우스 메텔루스에게 패해 트라키아로 패주했다. 그러나 트라키아의 왕자는 그를 배신하고, 로마로 이송된다.[1]
안드리스쿠스는 자기의 마케도니아에 대한 통치 신념은 학대와 착취라고 하여 마케도니아 도시들을 불태우고 폭정을 일삼았다. 이 사건 이후,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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