塵人조은산) 부천 육교 / goodmountain7 ・ 2020. 8. 27. 16:35

塵人조은산) 부천 육교 / goodmountain7 ・ 2020. 8. 27. 16:35

디케DIKE 1 456

 문득 밥벌이가 지겹고 버거운 때가 있다



줄어들지 않는 살림


늘어나지 않는 벌이



그 사이에 무기력하게 끼인


내 처지를 실감하는 날이 그렇다



그리고 일을 하다 부천 어느 동네 육교밑에서


점심을 먹고 늘어지는 턱주가리를 


억지로 추켜올리던 나른한 오후에



육교밑에 붙어있던 명판을


생각없이 훑어보다가


2005년 1월에서 2008년 12월까지의


공사기간을 새긴 대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05년 1월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한 잔의 물도 선임의 허락을 구하고 마셔야했던


한 대의 담배도 선임의 허락을 구하고 피워야했던


경고없이 머리뒤에서 날아들어오던 선임의 주먹을 받아내고 별 수 없이 화장실에서 훌쩍 눈물을 흘리던


불쌍한 이등병 신세가 아니었던가



2008년 12월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전역 후에 시작한 막일로 밑천을 벌고


그 돈으로 공부를 시작해 27살의 끄트머리에


먹고 살만한 직장의 입사 시험에 합격해


곧 다가올 첫 출근을 기다리던


당찬 신입사원이 아니었던가



3년이었구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 그 세월이


참으로 길지 않았구나 그리고



그 세월에


누군가는 묵묵히 부천 한가운데에


육교 하나를 짓고 사라졌구나



생각해보니 절망과 희망 사이에는 불과


3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만이 있었다



3년



세 번의 겨울을 이겨내고


세 번의 봄을 맞이할 뿐이다



3년



열심히 살아보자


다시 변할 것이다



다가올 나의 3년을 상상하다가


기저귀 찬 엉덩이를 흔들며 아장 아장 짧은 다리로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둘째를 떠올렸고


저녁 양치도 혼자하고 빤쓰에 지린내를 풍기지 않고


자기전에 발을 긁어주지 않아도 혼자 잘자는 


외나무다리 너머 첫째를 떠올렸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희망을 가져볼 만 하지 않은가



먹고 사는게 힘들어


잡생각이 더더욱 짙어지는 오늘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 자신을 위해서 이 글을 남겨본다

1 Comments
khh3546 2020.09.01 18:34  
희망을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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